누구에게나 문제없는 날은 없고 고민 없는 날도 없다. 고민이 내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걸으면서 고민을 이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에는 어쩐지 그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책, 걷는 사람 하정우 중에서
마음이 답답할 때, 고민이 머릿속에 한가득일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나요?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는데요. 때론 좋은 풍경을 보며 무작정 걷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마음이 답답해서 다녀온 남파랑길4코스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소개할게요.
부산 남파랑길4코스는 감천에너지파크에서 시작해 신평동 교차로까지 걸을 수 있는 코스예요. 이 코스는 참 넓은 아량을 가진 부산 같으면서도, 부산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코스예요. 산과 바다 그리고 전통 수산시장과 아파트들을 가로지르며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에요.
감천 문화마을도 아니고 감천 에너지파크에서 시작하는 길이다 보니 여기가 어딘가 싶기도 했어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다대포에서 송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 감천에너지파크예요. 이때까지 생각지도 못했어요. 간단한 트래킹 코스일 줄 알았는데 조금은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휴식공간도 많은 감천에너지파크에서 나와 감천항쪽으로 걸어갔어요.
처음 코스는 차들도 많이 다니고, 중간에 그늘이라고는 없는 길들의 연속이었어요. 냉동창고들이 많은 길이며,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바다 냄새가 참 많이 났어요. 바다 냄새 덕분에 어떤 누가 걸어도 이곳이 부산이구나라는 느낌이 자연스레 들 것 같았어요.
첫 고비라 생각이 들었던 성황당나무에서 두송반도 임도 입구로 가는 길은 산복도로를 연상케 했어요. 차 하나 겨우 지나가는 길과 가파른 경사가 저를 반기고 있었어요. 그 좁은 도로를 지나 발견한 임도 입구. 반갑기도 했지만 감당이 안 되는 더위가 시작되고 있어서 사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묵묵히 걸어갔어요.
입구에 혼자 걷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꼭 동행을 구해서 가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천천히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멀리 보이는 바다까지 다 걸어보자 마음을 다 잡았어요.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어요.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다 갈림길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멀리 다대포 바다도 보이는 것 같았어요. 예쁜 풍경에 힘을 내서 다대포항과 낫개항이 보이는 곳까지 열심히 걸었어요.
생각보다 너무 예뻤던 바다 풍경. 일반적으로 아는 부산 바다의 느낌이 아닌 날것의 부산 바다였어요. 세련된 해운대와 광안리에는 느낄 수 없는 부산만의 거칠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바다의 느낌을 받았어요.
통일 아시아드 공원을 지나 다대포 시장으로 향하다 보니 중간에 편의점이 있었어요. 편의점에 들어가 이온음료를 사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어요. 걸을 때 중요한 건 무작정 걷는 게 아닌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하는 거니까요. 체력을 충전하고 앞으로 남은 코스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어요.
남파랑길4코스에서 가장 기대가 된 몰운대에 도착했어요. 입구에서부터 시원한 산림의 바람이 불어와서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지나가는 분들에게 인사도 하며 들어간 몰운대는 정말 좋고 행복했어요. 걸으면서 들었던 힘듦과, 마음에 가득했던 답답함이 점점 사라지며 힐링을 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기분을 느껴 본건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다음으로 처음이었어요.
몰운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다대포에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대포 고우니 생태 길을 걸었어요. 푸른 하늘과 바다가 청량하게 느껴졌어요. 다대포는 노을이 정말로 유명한 곳이라 남파랑길4코스에 다시 오게 된다면 노을 시간에 맞춰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는 정말 부산에서 자랑해도 될만한 산책로였어요. 북구 강변까지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는 바다와 함께 걷는 느낌이 났어요. 해안산책로 중간중간 휴식공간과 화장실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부산에 이렇게 깔끔한 산책로가 있을까 생각하며 도착한 곳은 장림포구. 부네치아라는 별명이 있는 장림포구는 실제로 배에서 필요한 자재들의 창고를 알록달록 꾸민 곳이에요. 이탈리아 베네치아 느낌이 나서 알록달록한 벽에서 인증샷을 찍으러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해요. 주변에는 드론 체험을 할 수 있는 곳과 각종 어묵가게들, 소품샵들이 있었어요. 장림포구를 지나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낙동강 수문이 나오고 남파랑길 4코스가 끝이 난답니다.
힘든 코스를 시작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정돈된 해안산책로 코스까지. 남파랑길4코스는 부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걷기 코스였어요. 푸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산책로 코스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답니다. 언젠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남파랑길4코스를 걸어보세요.
남파랑길 4코스 거리
21.7km
남파랑길 4코스 소요 시간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