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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부산 매거진

[visitor’s note] 김도훈 작가 ❶ 나는 왜 부산 사람인가

  • ISSUE NO.2
  • 25.03.24
Visitor’s Note
부산을 방문했던, 그리고 부산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밀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기록들을 전합니다

나는 왜 부산 사람인가

김도훈

서울에서 활동 중인 부산 출신 작가, 영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영화잡지 <씨네21>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지금은 폐간된 남성패션지 피쳐디렉터와 인터내셔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지금은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등 일간지와 여러 잡지에 글을 쓰고 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에세이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알려지지 않은 여러 인물에 대한 글을 모은 책 <낯선 사람>을 썼다.

  • 김도훈 작가 사진

    김도훈 작가

  • 나는 부산 사람이다. 어딜 가면 꼭 그렇게 말한다. 네, 부산 사람입니다. 아니 잠깐. 이건 사실 근원적으로 따져보자면 잘못된 정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시다. 이것 역시 논리적으로 따져보자면 잘못된 정보다. 마산이라는 도시는 없다. 마산은 창원, 진해와 합병하며 이름을 창원에 양보했다.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충무를 충무라 부르지 못하는 통영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외항선 선장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육상 근무를 결정한 덕이었다. 내 아버지는 뼛속까지 뱃사람이다. 바다를 떠나는 걸 좋아했을 리가 만무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 성가신 일이다. 자신만을 위해 자신만이 좋아하는 것만을 하며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마산을 사랑했다. 인구 50만 정도의 고즈넉한 항구 도시는 1976년생 남자가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기에 아주 적절했다. 우리 가족은 바닷가 근처 아파트에 살았다. 매일 바다를 보며 학교에 갔다. 마산 앞바다는 도시 규모만큼이나 고즈넉했다. 내륙으로 깊이 들어온 마산만은 배 한 척 떠다니는 꼴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와 더 비슷한 무언가였다. 마산은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도시였다. 몇 대를 마산에서 산 사람들이 여전히 마산에 살았다. 외지인이 거의 없었다. 고인 도시였다. 고인 도시는 아이에게는 나쁘지 않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탄하고 평온한 덕이다. 물론 고인 도시에 영원히 살기란 힘들다. 아이들은 결국 떠날 시기가 온다.

  • 나에게 그 시기는 조금 빨라졌다. 중학교 2학년이 끝나던 해 부산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냥 큰 마산이야. 바다도 있고” 어머니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의 첫날이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복도를 걷다 뛰어오던 아이와 부딪혔다. 나는 마산에서 하던 대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이런 시부럴 개 어쩌고 새끼 어쩌고”를 외친 뒤 다시 달려갔다. 나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 채 사라지는 그 새끼, 아니 아이를 바라봤다. 나는 곧 깨달았다. 부산은 큰 마산이 아니었다. 외지인들이 모여 만든 이 거대하고 역동적인 도시는 정글이었다. 처음 부산 앞바다를 본 날에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내가 평생 바다라고 생각하며 보아온 마산 앞바다는 바다가 아니었다. 이거야말로 바다였다. 강했다. 거칠었다. 나는 결심했다. 강해져야겠다. 거칠어져야겠다. 부산 사람이 되어야겠다.

  • 사진

    마산에서 태어난 김도훈 작가는 중학교 시절, 부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산사람이 된다.

  • 부산의 풍경 사진 1
    부산의 풍경 사진 2

    김도훈 작가가 기록한 부산의 풍경들

  • 그래서 내가 성공적인 부산 사람이 됐냐고? 나는 부산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보냈다. 서울서 살기 시작한 건 지난 2000년대 초반이다. 수학적으로 따져보자. 나는 마산에서 14년을 살았다. 부산에서 12년을 살았다. 서울에서 20년을 살았다. 다 합쳐도 46이니 3년이 모자라는 데, 캐나다에서 1년, 영국에서 2년을 살아서다. 나는 부산 사람이 될 자격보다는 마산 사람이 될 자격이 더 크다. 아니, 서울 사람이 될 자격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부산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과 동생이 여전히 부산에 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다. 내가 부산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이유는 그저 가족 때문만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징글징글하기 때문이다.



    김도훈 작가의 "나는 왜 부산 사람인가"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글 : 김도훈
  • 편집 : 문주화
  • 사진제공 :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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