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or’s note] 김도훈 작가 ❷ 나는 왜 부산 사람인가
서울에서 활동 중인 부산 출신 작가, 영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영화잡지 <씨네21>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지금은 폐간된 남성패션지
김도훈 작가
부산은 정말 징글징글한 도시였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나는 대체로 좀 조용하고 내향적인 기질을 타고났다. 마산은 그 기질에 아주 적합한 도시였다. 부산은 아니었다. 외향적으로 되지 않으면 좀처럼 살아남을 수가 없는 도시였다. 나는 조금씩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친구를 조금 더 쉽게 사귀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와 대학교라는 예비 성인의 경로와 맞아떨어졌다. 인간의 정체성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내가 보기에 그건 유년기도 소년기도 아니다. 청년기다. 마산 살던 소년기 나의 꿈은 화가였다. 내향적인 직업이다. 부산 살던 12년 동안 내 꿈은 화가에서 기자, 혹은 평론가로 바뀌었다. 외향적으로 되어야만 하는 직업이다. 이놈의 도시는 나를 거꾸로 들고 흔들어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하다. 심지어 나는 군대까지 부산의 한 부대에 배치받았다. 심지어 현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행운이라고? 아니다. 나는 군대 정도는 제발 좀 부산에서 떨어지기를 희망했다. 이놈의 도시는 좀처럼 나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왜 부산 사람인가? 이유가 뭐 있겠는가. 한 번 부산 사람이 된 사람은 계속 부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징글징글한 도시는 절대 당신을 진정으로 놓아주는 법이 없다. 나는 저항하려 애썼다. 서울에 오자마자 서울말도 완벽하게 익히려 노력했다. 평생 사대문 안에서 몇 대를 산 사람으로부터 “서울분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꽤 의기양양했다. 그도 내가 “블루베리 스무디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면 그런 착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부산 사람이 완벽한 서울 사람이 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나를 부산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거대한 요소는 사투리 따위가 아니다. 끊임없는 탈출의 욕구다. 20대의 나는 부산을 탈출하고 싶었다. 부산이 싫었기 때문이 아니다. 바다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많은 바다가 있다. 부산 앞바다 같은 바다는 없다. 부산 앞바다는 징글징글한 도시만큼이나 징글징글하게 압도적이다. 그 너머에 뭔가가 있을 테니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숨은 메시지를 젊은 영혼들에게 매일매일 발산한다. 젊은 날의 나 역시 바다를 보며 부산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항구는 결국 떠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작가는 서울에 지내면서도 여전히 부산의 음식들을 자주 먹는다.
작가는 서울에 지내면서도 여전히 부산의 음식들을 자주 먹는다.
김도훈 작가
결국 이 글은 뼛속까지 부산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자의 부산에 바치는 반성문으로 끝나야만 할 운명이다.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알겠다. 항구는 떠나라고 존재하는 동시에 돌아오라고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국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인 심수봉이 노래했듯이 눈 앞의 바다는 그저 핑계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 쿠팡이츠 단골집 리스트의 가장 상위에 있는, 마포 용산에서 가장 밀면과 돼지국밥을 잘하는 식당들이 증거다. 야구도 보지 않는 주제에 롯데만 생각하면 화가 치솟는 괴상한 심보도 증거다. 바깥에서는 서울말을 구사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고양이에게는 부산 사투리로 말을 건네는 내 혀도 증거다. 나는 아마 서울에서 죽을 것이다. 서울 사람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사는 부산 사람으로 죽을 것이다. 내 사랑은 징글징글하다. 부산은 징글징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