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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부산 매거진

[visitor’s note] 신보슬 큐레이터 : 당일치기, 부산

  • ISSUE NO.2
  • 25.03.28
Visitor’s Note
부산을 방문했던, 그리고 부산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밀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기록들을 전합니다

당일치기, 부산

  • 신보슬 큐레이터 사진

    신보슬 큐레이터

  • 신보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석사,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부터 전시기획을 시작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트센터 나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성을 띤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 전시팀장, 의정부디지털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독일 베를린 <트렌스미디알레(transmediale)>, 런던 골드스미스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 인도 델리 제1회 CeC&CaC 등 국내외 미디어아트 관련 학술행사 및 전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이자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하며 미디어아트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부산에 방문했던 장소들

    주로 당일치기로 부산을 방문하지만, 시간이 쌓여 부산의 곳곳에 추억이 쌓였다.

  • 철도 파업. 대전에 심사를 가야 하는데, 열차 운행 지연으로 예약했던 기차를 놓쳤다. 서울역 카페에 앉아 코레일 열차 예매버튼을 광클릭하여 간신히 구한 티켓으로 허겁지겁 오른 기차는 부산행이었다. 순간, “그냥 이대로 부산까지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부산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KTX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부천에서 평창동으로 하루 네 시간 가량을 출퇴근하는 나에게 부산은 심리적으로 그리 먼 곳은 아니다. 서울 안에서도 차가 막히면 강남에서 강북까지 두 시간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 두 시간 만에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전시도 보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으니 하루 일탈로는 최고다. 그래서인지 나의 부산 여행은 90퍼센트 정도가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 나의 부산행은 대체로 무작정 떠난 경우가 많았다. 일상에 눌리고 지칠 때, 출근길을 돌려 서울역으로 갔다.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휙휙 지나는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계절을 느끼기도 하고,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기도 했다. 계획 없이 떠났으니 마땅히 가고 싶거나 가야 할 곳이 있지도 않았지만, 습관처럼 미술관을 찾았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어디든 늘 전시는 있었다. 전시 하나 보고, 바다도 보고. 그러다 보면 일상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던 것 같다. 바닷가에 앉아 이른 저녁으로 먹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저 하루. 한나절이지만, 그래도 잠시 바닷바람을 쐬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다.

    물론 당일치기 부산은 일의 연장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일탈보다 일이 많다. 특강을 하거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들이 종종 있다. 지역에서 전시를 하면, 챙겨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산에서 한다면 기어이 가려고 시간을 만든다. 전시를 핑계 삼아 잠시의 일탈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신보슬 큐레이터 사진 2

    안상수 디자이너의 트레이드 마크 포즈로 사진을 찍은 신보슬 큐레이터

    OKNP부산

    해운대 바닷가가 한눈에 보이는 OKNP부산

  • 지난 2024년 5월, 어린이날이었다. 안상수(날개)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전 소식을 전하는 카톡이 왔다. 카톡을 주고 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직접 연락을 주셨으니 꼭 보러 가야지 생각하며 챙겨보겠다고 회신을 드렸다. 이런저런 행사로 바쁘게 5월을 보내고 전시 마지막 날인 6월 9일. 일요일 아침 미술관에서 독서 모임을 마치고 부랴부랴 부산으로 떠났다. 마지막 날이니 어쩌면 날개가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홀려라⟫(2024.05.02 - 06.09, OKNP 부산점) 전시장에 들어섰다. 그랜드 조선호텔 4층에 위치한 OKNP는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깔끔한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공간과 바다를 볼 수 있는 통창이 있는, 나름 매력있는 공간이었다. 날개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 자모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새롭게 풀어내는 ‘문자도’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을 본 적은 없던 터라, 흥미롭게 전시를 보고 있다가 전시장에서 날개를 만났다. 날개의 트레이드마크인 한 쪽 눈을 가리고 찍는 인증사진과 더불어 늦은 오후 전시의 마지막 관객으로 작가와 여유 있는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을 가졌다.

  • 안상수의 개인전 전시 전경

    2024년 해운대 OKNP에서 열렸던 안상수의 개인전 ⟪홀려라⟫전시 전경.

  • 부산비엔날레는 업무와 일탈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작년에도(2024년) 비엔날레를 관람하러 부산을 찾았다. 아침 9시 비행기로 내려가서 부산현대미술관의 본전시를 보고, 시내로 들어와서 특별전시를 다 둘러본 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밀면 한 그릇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해적’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현대미술의 매운맛을 기대해서 그랬는지 비엔날레 전시는 너무 순하게 느껴져서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후 바닷가에 둘러앉아 전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 와서 그런지 돌아오는 마음이 나쁘지 않았다. 부산비엔날레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전시가 좋으면 좋은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추억 하나 쌓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오게 된다. 가끔 이런 부산의 매력이 위험할 때도 있다. 2004년 비엔날레 때였던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엔날레를 보러 가기로 했다. 1시쯤 부산에 도착했다. 우선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먹고 전시를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부산까지 왔으니, 바다를 보면서 밥을 먹자며 청사포의 한 조개구이집으로 갔다. 푸짐한 조개구이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고 나니, 다들 현대미술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예술은 다음에 보자며,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 신보슬 큐레이터 사진 3

    신보슬 큐레이터는 전시관람을 위해 당일로 부산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 방문 사진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부산비엔날레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갤러리들은 부산을 찾아올 이유가 된다.

  • 부산을 하루 만에 다녀온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래 있으면서 부산을 제대로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곳에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루씩만 만나서 알게 되는 부산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하루들이 추억과 함께 쌓이면 또 새로운 부산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부산에서 살며 작업하셨던 방정아 작가님은 부산의 매력을 알려면 최소 열흘은 머물러봐야 한다고 했다. 하루와 하루를 더해가면서 부산을 만났던 나는 아직 부산을 잘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직 부산에 보아야 할 것과 만나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당일치기 부산을 꿈꾼다.

  • 글 : 신보슬
  • 편집 : 문주화
  • 사진제공 : 신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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