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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부산 매거진

[visitor’s note] 홍윤이 작가 : 떡볶이와 해운대

  • ISSUE NO.2
  • 25.03.31
Visitor’s Note
부산을 방문했던, 그리고 부산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밀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기록들을 전합니다

떡볶이와 해운대

홍윤이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편집 디자인과 그림 작업을 하며, 종종 장기 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과 경험은 개인 작업의 주요 테마가 되고, 이를 그림과 글로 꾸준히 남기고 있다. 지금까지 25개국 60여 곳을 여행했으며, 앞으로도 체력과 통장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다닐 예정이다. 쓰고 그린 책으로 <뉴올리언스에 가기로 했다>(공저),<세 나라의 예술가 열 개의 마을 하나의 키르기스스탄>(공저) 등이 있다.

  • 홍윤이 작가 사진1

    홍윤이 작가

  • ‘부산’을 떠올리면, 셀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내게 부산은 ‘한반도 동남부의 해안 도시이자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이 아니라, 내 시작이고, 내 집이고, 내 유년이고, 내 가족이니 그렇지 않을 도리도 딱히 없다. 부산 여행 가방엔 내 과거도 함께 실려 와 언제나 짐이 무겁다. 이젠 부모님도 부산에 살지 않아 부산엔 ‘우리 집’도 없건만, 부산 여행은 여행 같지 않으니 괜스레 손해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아 태어난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랐다. ‘부산직할시 동래구’에서 태어나 집 주소가 ‘부산광역시 금정구’로 바뀌고도 한참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그 주소는 사라졌다. 집이 팔리고 몇 년 뒤 헐려 다른 건물과 합쳐져 그 땅이 새 주소를 받았기 때문이다.

  • 비프광장 사진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부산 중구의 비프광장

  • 부산 여행을 앞둔 친구들은 고향이 부산인 나에게 묻는다. “부산에선 뭘 먹어야 해? 뭐가 맛있어?” 그럴 땐 나도 슬쩍 인터넷 창을 열어 구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부산은 90년대 ‘부산광역시 금정구의 없어진 주소’에서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산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십중팔구 지금은 먹을 수가 없다. 우리 집 앞 리어카에서 할머니가 팔던 떡볶이는 방앗간에서 바로 가져온 가래떡으로 만들어 말랑말랑하고 맛있었다. 여름에는 튀김을 팔고, 날씨가 추워지면 튀김이 물어묵으로 바뀌었다. 짭조름한 국물이 흠뻑 밴 물 떡을 간장에 찍어 먹는 그 맛 때문에 나는 찬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렸다. 하여 ‘어묵국물’ 냄새가 내겐 겨울 냄새였다. 시장 입구에서는 ‘콩국’을 팔았다. 콩국은 ‘먹는다’ 보다는 ‘마신다’가 더 맞는다. 콩 국물에는 우뭇가사리로 만든 한천이 들어있어 입안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한 그릇을 한 번에 후루룩 들이켜도 속이 개운하고 부대끼지 않는다. 친구들의 질문에 무조건적 반응처럼 리어카 떡볶이, 시장 콩국을 비롯, 학교 앞 분식집 라면과 김밥, 저렴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던 국밥과 백반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던 고등학생이 아니고, 서울과 세계 각지에서 온갖 음식을 먹어 본 흰머리가 꽤 올라온 어른이 되었다. 정작 부산 살 때는 못 먹어본 대구탕과 조개구이를 서울 친구들에게 추천하며 입맛 다시는 그런 어른 말이다.

  • 해동용궁사와 국제시장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해동용궁사의 모습(위)과 국제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들(아래) (사진: 홍윤이)

  • ‘산과 바다 중 어디가 더 좋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산’이라고 대답하는 나지만, 해운대만큼은 사랑한다. 우리 가족은 여름 밤 해운대에 자주 갔었다. 엄마는 ‘밤에 가야 더 시원해.’라고 했지만, 아마도 엄마의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우린 해가 뉘엿뉘엿하면 돗자리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해가 진 해운대는 낮이 얼마나 더웠든 상관없이 시원했다. 모두 한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서 미지근한 바람을 맞는다. 멀리 포장마차의 조명을 등지고,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며 듣는 파도 소리는 다른 모든 것을 삼킬 만큼 크고 웅장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그 파도에 낮의 소음을 묻으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한 번도 자율적이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종종 자율적으로 행동했다. 교무실 담임의 자리에 선생님의 슬리퍼가 놓여 있으면, 우리도 함께 이른 퇴근을 했다. 자율적인 여고생들은 부산대 앞 노래방에 가거나, 서면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걸로도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을 땐 가끔 100번 버스를 타고 해운대에 갔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금방 해운대에 도착했다. 백사장을 한참 걸어서 해수욕장 끝 조선비치호텔(현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 앞까지 가면 그 앞엔 모래보다 바위가 많다. 해 질 녘에는 바위틈에 양초가 드문드문 꽂혀 있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켜 놓은 촛불을 바라보며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던가, 장난스레 ‘토니 안과 결혼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가. 너울거리는 촛불을 한참 멍하니 보다가 교복 치마 아래 종아리가 시려오면 ‘춥다. 집에 가자.’하고, 다시 버스를 타러 갔다.

  • 흰여울 마을 사진 1
    흰여울 마을 사진 2

    홍윤이 작가가 기록한 흰여울 마을의 풍경

  •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이란 명목으로 기웃거리며 문득 깨닫게 된 게 있다.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부산을 찾고 있더라. 바다처럼 넓은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¹ 에서는 해운대를, 튀르키예 트라브존²의 바닷가 언덕 마을을 보고선 부산 원도심의 동네를 떠올렸다. 야트막한 산을 오를 때마다 금정산의 젖은 흙냄새를 맡는다. 이 산에도 어딘가 성벽이 남아 있진 않을까 두리번대 본다. 성문을 찾으면 그 앞에는 생강 엿장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 홍윤이 작가 사진2

    홍윤이 작가

  • 할아버지는 실향민이었다. 생전 술을 마시면 울면서 고향을 찾는 할아버지를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 내가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지금에야 할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한다고 감히 말한다.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곳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삶은 어떠할까? 할아버지는 부산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끈적거리는 바닷바람 속에서 어떻게 평양을, 고향을 찾아다녔을까? 내가 방황을 끝내고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곳은 부산이다. 그것이 물리적인 회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부산엔 집도 없고, 내 자리도 없지만, 기억이 있고, 바다가 있고, 산이 있다. 부산에서 내가 알던 풍경은 사라지고,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건 다만 바다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릴 거란 믿음이 있다. 돌아간 바다에서 파도는 쉼 없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들이쳐, 나의 소란을 덮어줄 것이다.

  • ¹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큰 호수. 부산 면적의 두배 정도 크기이다.
    ² 튀르키예 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 약 71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 글 : 홍윤이
  • 편집 : 문주화
  • 사진제공 : 홍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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