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or’s note] 하세가와 요헤이 ❶: 온몸의 모공이 열리는 느낌
하세가와 요헤이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바이닐 디제이. 1995년 우연히 접한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에 매료돼 처음 서울을 찾은 뒤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다. ‘요헤이陽平’를 한국식으로 읽은 ‘양평’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는 ‘곱창전골’, ‘산울림’, ‘김창완밴드’, ‘델리스파이스’, ‘강산에밴드, ‘황신혜밴드’, ‘뜨거운감자’ 등에서 연주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로 활동했고, 현재 밴드 장기하에서 연주하고 있다.
한국의 록과 인디 음악, 시티팝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담은 《大韓ロック探訪記》(Du Books, 2014) 《고고! 대한 록 탐방기》(북노마드, 2015)를 출간했고, 2023년에는 《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김밥레코즈)을 출간했다. ‘From Midnight to Tokyo’, ‘This is the City Life’ 등의 음감회와 파티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KTX 문이 열리고, 부산역 플랫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몸이 훅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것만 같다.
처음 한국에 오기 훨씬 전, 일본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조용필 선생님이 특유의 미성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다른 부분은 일본어로 부르다가 가장 중요한 후렴구는 한국어로 불렀는데, 그 가사가 귀에 익지 않은 내게는 어쩐지 주문처럼 들렸다.
부산역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노랫말이 ‘부산항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라는 건 전혀 몰랐지만, 어쨌든 그 곡이 ‘부산’이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해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1996년, 나는 새마을호를 타고 일회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먹으며 난생처음 바로 그 부산으로 향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부산역 앞에는 긴 경사로가 있었고, 중력에 의해 굴러 내려가는 캐리어를 붙들고 나도 함께 끌려 내려갔던 것 같다. 오래 전인 만큼 첫 부산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버스를 타고 온천장역의 ‘허심청’¹ 에 갔던 일은 꽤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곳으로 향하던 길에 버스 창밖으로 레코드 가게가 보였는데, 선반 가득 꽂힌 레코드를 보며 당장 내려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아직도 이 장면만이 가장 선명하다니, 슬픈 일이다). 소크라테스 조각상의 입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나오던 허심청의 ‘철학탕’에 몸을 담갔던 일, 그리고 목욕 후 들른 양곱창집에서 아주 맛있게 술을 마셨던 기억 등도 드문드문 떠오른다.
달맞이 고개에서 바라본 해운대 풍경
두 번째 부산행부터는 좀 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인디음악 붐이 시작되던 1997년,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한국 인디밴드에 끼어 부산까지 따라가 게스트로 몇 곡을 연주했다. 공연장은 서면 번화가에 있던 어느 건물 안쪽의 넓은 공간이었는데, ‘복합문화공간 반反’² 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이른 아침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해 공연을 하고 뒤풀이도 적당히 즐긴 후, 같은 날 한밤중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다시 홍대로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몸에 스며들며 떠오른 건 부산의 활기, 일본인인 나에게 유독 친절하게 대해줬던 부산 사람들, 그들과 서툰 영어로도 스스럼없이 나누었던 대화였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디밴드의 여명기에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셨던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 혹은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부산 출신 밴드 ‘Every Single Day’나 ‘Ann’ 등과 함께 당시 인디밴드들의 아지트에서 자주 술을 마시고 취해서 다 같이 잠들곤 했다. 젊은 때였다.
¹ 1991년 완공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로 개장했던 가장 큰 온천수 목욕탕.
² 1997년 부산 서면에 문을 열었던 문화공간.‘최근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지난달 7일 아마추어들을 위한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반(反)」이 부산 서면 중심가에 문을 열었다. 꾸며진 촌스러움의 키치문화를 내세우는 한국적 펑크록 밴드 「황신혜 밴드」의 공연(4일 오후 7시)을 시작으로 서면 「날라리」 패션 콘테스트, 「최소리 밴드」 콘서트 등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마당을 펼치게 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휴식공간으로 무료 개방되며 토요일 공연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97.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