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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막마을을 아시나요?

근대역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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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시간은 세월의 흐름을 재촉하고 있었을 텐데 이곳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나보다. 다닥다닥 붙은 낡고 좁은 집,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 뼘 만 한 골목. 색다른 풍경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지만 그 내력을 알고 보면 감성에 젖을 수만은 없는 곳. 우암동 소막마을로 떠나본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국소를 수탈하기 위한 근거지를 마련한 곳이다. 부산항의 동쪽 항 즉, 동항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에 소 막사와 검역소를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한우를 일본으로 빼돌렸다. 광복 후에는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한국전쟁 중에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비어있던 우암동 소 막사에 거주하게 되면서 소막마을이 탄생하게 되었다.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공간은 막사와 막사 사이 그 틈 속에도 판잣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게 만들었다.

지붕위로 축사 환기구가 불쑥 솟아있다. 슬레이트로 증축한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나무로 만들었던 옛 소 막사임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수십 개의 막사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이런 부분적인 형태의 흔적만 남아있다.

소막마을의 골목은 어른 두 명이 겨우 지나갈까 싶은 좁디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구조다. 앞과 뒤로 서로 마주한 집들은 과거 소 막사의 원형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오래된 처마와 창살, 바닥에 볼록 솟아있는 하수구 뚜껑까지, 여전히 수탈과 피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소막마을엔 웃음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든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골목에서 산뜻하게 색칠된 아기자기한 벽화들을 만난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벽화는 삭막함을 잠재운 골목마다 따스한 온기를 드리운다.

부산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밀면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도 바로 이 곳 소막마을이다. 함흥에서 냉면을 팔던 할머니가 피난 내려와 겨우 자리 잡은 이곳에서 냉면과 밀면을 같이 팔기 시작한 것이 부산 밀면의 시초가 되었다. 간판에 쓰여 진 ‘since1919’를 굳이 읽지 않더라도 골목시장의 분위기가 밀면의 원조임을 알려준다.

건물 꼭대기에 커다란 예수상이 양팔을 펼치고 우뚝 서있는 동항성당 역시 소막마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아름다운 부산항대교의 야경스폿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소막마을 주민들을 위해 헌신해온 성당의 역사가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 천막성당 시절부터 6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가난한 우암동 주민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동항성당이다.

골목 안으로 발을 디딜 때는 신기하고 정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골목 밖으로 나설 때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가슴에 담는 곳, 바로 우암동 소막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