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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부산 매거진

[Mapping Busan] 고성호 건축가 ❶
건축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풍경이 될 때

  • ISSUE NO.1
  • 25.01.21
Mapping Busan
다양한 분야에서 부산의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비짓부산의 인터뷰 섹션입니다.
  • 고성호 건축가

    인터뷰 진행에 앞서 고성호 건축가의 프로필을 받았을 때, 인상깊은 문장이 있었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 그 속의 생활을 조직하고, 그 너머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숭고한 표현이다.’ 건축물을 하나의 물질적인 구조물로 보지 않고 그 주변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풍경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문장이었다. 섬진강이 보이는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그가 수영강이 흐르는 곳에 사옥을 지은 것도 당연히 우연은 아니다. 고성호 건축가가 설계한 ‘칠암사계’와 ‘선유도원’은 그 주변의 바다, 수원지와 어우러지며 부산만의 고유한 풍경으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모두가 외면하던 곳이었던 그 일대는 이제 사람들로 북적이며 다시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잘 만들어진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선순환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하는 그는 부산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동시에 부산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부산사람’이었다.

  • 고성호 건축가 사진 1

    고성호 건축가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부산에 살면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성호이다.

    우리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사옥도 건축가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것으로 알고있다. 수영강과 광안리 앞바다가 만나는 지역이다.

    어렸을 때 섬진강 주변에서 자랐다. 부산에서 산 시간은 약 50년 정도이고. 이제 부산이 고향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린시절 강을 보며 느꼈던 정감들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이 주변도 많이 발달했지만, 이 사옥을 지을 당시만해도 수영강 주변은 악취가 풍기는 곳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강이 주는 위로의 느낌을 나도 모르게 찾았던 것 같다.
    왜 이곳에 사옥을 짓게 되었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 강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맑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실제로 그런 장면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 그렇다면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신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었던 것인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되신 과정이 궁금했다.

    처음 시작은 조경과 실내 인테리어였다. 일을 점점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계가 느껴졌다. 내가 꿈꿔온 환경 혹은 도시의 개념이 있는데, 그것들을 실행하려고 하니 나에게 주어진 캔버스가 작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일의 범위가 확장된 것 같다. 그리고 공업계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 설계와 관련된 기초 업무들을 처음 접했다. 당시는 잘 체감하진 못했지만, 그런 일련의 활동들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나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이 느껴지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얻는 다는 건 나와 잘 맞는 일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 까지 건축의 과정에 포함을 시키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의 프로젝트에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가.

    프로젝트의 규모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1년 6개월 정도 소요된다. 설계에서부터 완성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사용자들이 공간으로 들어와서 생활하기 시작하는 거고. 그래서 건축을 건축가와 건축주로 양분하는 이분법적인 구분법은 옳지 않다. 사용자가 우선시되고, 그 다음에 건축가와 건축물이 차례로 연상되는 삼분법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여긴다.

  • 고성호 건축가 사진 2

    PDM 파트너스 사옥 1층에는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이 소개되어 있다. 프로젝트 들을 소개하고 있는 고성호 건축가.

    PDM 파트너스의 앞 풍경 사진

    PDM 파트너스의 앞으로는 수영강이, 뒤로는 망미동 일대가 보인다.

  • 결국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잘 엮어야만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인 것 같다. 보통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건축가와 예술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예술가와 큰 차이가 있다면, 작가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나. 건축가는 그게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그게 어렵다. 무조건 타협해야 한다.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건축물이 완성된다.

    건축가님의 프로필에 새겨 놓으신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 그 속의 생활을 조직하고, 그 너머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숭고한 표현이다.’ 건축가로서의 철학이자 다짐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통념은 건축물을 단지 눈에 보이는 외관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건축은 물리적인 형태나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공간에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이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건축물은 단순한 콘크리트 박스처럼 재료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많은 정신세계들을 구축하고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건물 안에 직접 머무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그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건축이다. 건축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순환이 있다고 믿는다.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을 보고 폭력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 고성호 건축가 사진 3

    부산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소개되고 있는 고성호 건축가. 지역에 대한 애정 또한 높다.

  • 그렇다면 건축가로서 바라보는 부산이라는 도시는 어떤 공간인가?

    가능성이 많은 도시임은 분명하다. 기존에 부산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들은 변하지 않을 거니까. 그러니까 그 변하지 않는 사실에 대한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건축가들이 얼마나 환경과 잘 어우러진 건축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숙제이다. 건축법상 바다나 강 근처에 더 높은 용적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앞 단에 있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구성원들이라면 자연환경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게 되면 도시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슬럼화가 가속화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고성호 건축가 사진 4

    고성호 건축가

  •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부산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세계화를 겪으면서 형성된 초연결 사회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도시마다 가졌던 고유한 특징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트렌드가 시작되면, 그 트렌드의 영향을 전세계가 함께 공유한다. 그러면서 도시의 개성보다는 유사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요즘은 역으로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부산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정말 다양한 문화들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 부산이다. 일본의 문화적 흔적들도 엿보이고. 다이나믹함과 다양성이 많은 도시가 내가 경험한 부산이라는 도시이다. 일례로 영도의 깡깡이마을을 떠올려보면, 그 지역의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깡깡이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과거의 산업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속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건축가님께서 즐겨 찾거나 특별히 애정하는 부산의 지역은 어디인가.

    범어사에 주말 주택이 있다. 범어사로 올라가는 길에 일제시대때 형성된 편백림이 있다. 세월로 따지면 90여년 정도 됐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대사에서 슬픈 역사임은 부인해서는 안된다. 일제시대의 잔재인 그 등산로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숲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 길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곳은 수원지와 연결되는 발원이기도 하다. 범어사는 이런 자연환경과 여러 시간들이 중첩되어 있는 고찰인 동시에 부산의 큰 자산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부산에 터를 잡으시고 활동하시는 이유도, 부산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이 되는 것인가. 인구 소멸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 부산에서 건축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다.

    건축가로서 가지고 있는 책임과 연관되는 것 같다. 사실 건축은 공간이 완성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머물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내가 부산을 벗어나게 되면 그런 책임감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건축이 가지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늘 생각한다. 환경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년 겪는 태풍이나, 부산의 바닷바람이 가지고 있는 염분 등 건축물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훼손을 겪을 수 밖에 없고 부산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한편에 속한다. 그런 측면들을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산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 PDM 파트너스 사옥 1층 사진

    PDM 파트너스 사옥 1층

  • 부족한 인프라를 말씀해 주셨다. 분야를 막론하고 부산이 당면한 과제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계속 활동을 전개하시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부산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건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도시가 없는 것 같다. 이건 단지 오래 살았다고 생기는 감각은 아닌 것 같다. 건축가로서 가진 지향점이 있지 않나. 나는 주변하고 관계를 맺고, 건축물 자체가 돋보이기 보다는 환경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해왔다. 그렇기에 바다와 산, 강과 같은 자연적 요소가 풍부한 곳이 나와 잘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산만한 도시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광들과 어울리지만, 막상 가보면 만든 사람의 고유함이 드러나는 건축이 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형태이다.

  • 글 : 문주화
  • 인물사진 : 조균래
  • 사진제공 : PDM 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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