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뭘까.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 중에서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을 뿐더러 부산에서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돼지국밥이 한자리를 차지할 거다.
원래 돼지국밥은 황해도 음식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황해도 사람들이 돼지 잡고기와 내장 등 부속을 넣고 끓여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유래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밥보다는 국수를 말아먹었는데 쌀이 풍족해지면서 국밥의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돼지국밥집은 멀리서부터 알 수 있다. 몇 시간씩 큰 솥에서 돼지사골을 푹 삶다보니 먼저 그 구수한 냄새로 손님들을 유혹한다. 돼지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중 중 유독 24시간 영업집이 많은 건 돼지사골을 넣고 진하게 우려된 육수를 계속 끓여야만 진짜배기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솥 옆에 수북이 쌓인 고기를 썰어 뚝배기에 넣고, 솥에서 끓고 있는 육수를 부으면 금세 국밥 한 그릇이 완성된다. 얼핏 보기에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패스트푸드’ 같지만 이런 속도로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 끓여 낸 진한 육수가 필수다. 뚝딱 국밥 한 그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정성이 들어간 ‘슬로푸드’ 정신이 필수인 셈이다.
돼지국밥의 상차림은 소박하다. 간을 맞추는데 쓰는 새우젓, 진한 육수를 얼큰하게 해주는 다진 양념 그리고 마늘, 양파, 고추, 정구지(부추겉절이) 마지막으로 에피타이저로 먹을 수 있는 소면 한 덩어리가 전부다. 돼지국밥을 손님상에 올릴 때 기본적으로 다진 양념을 한 큰 술 넣는 경우가 많지만, 정석은 손님이 직접 다진 양념과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거다. 이때 고수들은 먼저 양념이 대 있는 정구지를 국밥에 듬뿍 넣어 씹는 맛과 시원함을 더한 후 다진 양념과 새우젓으로 취향에 맞게 간을 맞춘다.
보통 돼지국밥집 메뉴는 돼지국밥, 순대국밥, 내장국밥, 섞어국밥 그리고 수육백반이 일반적이다. 건더기가 없는 육수 한 뚝배기에 도톰한 수육과 볶음김치가 함께 나오는 수육백반은 일행이 많으면 따로 하나 시켜 반찬같이 먹으면 좋다. 수육백반은 쌈에 싸 보쌈처럼 먹을 수 있어서 애주가들이 찾는 단골 안주이기도 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을 크게 한 숟갈 떠본다. 간이 맞춰진 뜨끈한 육수와 도톰한 살코기의 조합을 입으로 가져간다. 온기를 잔뜩 품은 돼지국밥 한 숟갈이 순간 입안의 혀를 춤추게 한다. 어떤 음식보다도 간단하고 저렴하지만 정성 가득한 부산의 맛은 기분까지 즐겁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하나둘 맺히기 시작한다.
이럴 때 흔히 하는 한국 사람만의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아~ 시원하다”